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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23

절제

절제​​하고 싶은 말을삼키는 순간,그 말은 뿌리로 내려간다.​아무도 모르는 사계절을 지나침묵은 끝내말없이 꽃이 된다.​그 기다림의 무게를묵묵히 견뎌야비로소 피는 꽃이 있다.​참는다는 건무너짐이 아니라스스로를 품는 일.​마음을 제 자리에 둘 줄 아는 이,그가 삶의 물줄기를 다스린다.​넘치지 않고스며들 수 있어야오래간다.​​-By가치지기Restraint ​The moment I swallowthe words I wish to say,they sink deep —becoming roots.​Through unseen seasonssilence endures,until at last,it blooms — wordless — as a flower.​One must bearthe weight of waitingin..

2025.06.30

별의 온기

별의 온기 ​​힘겹게 살아낸 하루,문득 고개 들어 올려다본 하늘—​먹먹한 검은 도화지 위에작은 흰 점들이 조용히 반짝입니다.​그렇게 한참 밤이 깊어지면그제야 별이 말을 겁니다.​아득한 숨결 하나, 둘—머나먼 빛결들이소리 없이 다가와지친 하루의 등을살며시 토닥여 줍니다.​아주 먼 옛날,빛이 처음 태어나던 순간—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사랑의 호흡은사람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었음을흰 별들이 조용히 속삭입니다.​어둠의 심연 끝에서삶의 마지막을 아는 별은남은 빛을 작은 별들에 나누어 입히며작별의 아쉬움만큼긴 꼬리를 그어별똥별로 스러진다고 합니다.​언젠가 나도,그 별처럼누군가의 지친 하루 끝을가만히 감싸주는작은 빛결이 될 수 있다면—​한때 찬란했던 당신이빛을 잃고 움츠린 채길을 헤매는 밤,흔들리는 마음을다시 일으켜 세..

2025.06.28

잔소리

잔소리 ​사랑이라 부르기엔너무 거칠었던 말들날마다 귀에 걸리던무심한 조각들​풀잎을 일으키는 건지나간 바람이 아니라쓰러지듯 오래 내린비였음을 살며 배웠다​“밥은 잘 챙겨 먹었니”“따뜻하게 입고 나가”“세월 금방 간다”​젊은 날,문턱 밖으로 밀어냈던그 말들이​어느새 향기 되어내 삶의 기슭을 잡아주고​그날의 그리운 소리들이오늘은 비 되어조용히 내리고 있다 ​-By가치지기Nagging​Words too harshto call them love —fragments that dailyhung on my ears,unnoticed shards.​To raise a blade of grass,not the fleeting wind,but the rain that fallslong and steady —this, I’v..

2025.06.17

젠가 인생

젠가 인생 ​하루마다한 조각씩 빠져나가는침묵의 삶​위태로운 나날들이숨죽이며 휘청인다​삐걱이는 틈새에떨리는 손끝을 다잡고덜컥이는 속을 감추며​말없이티 나지 않게무너지지 않게또 하루를 뽑았다​얼마 남지 않은조각들이아슬하게 버티고 있다​​-By 가치지기​​Jenga Life​​Each day,a piece quietly slips away—a life lived in silence.​Precarious daysstagger in hushed breaths.​Grasping trembling fingertipsat creaking cracks,concealing a heart that falters.​Silently,without a trace,without collapse,I pull out another d..

2025.06.14

하루의 눈

하루의 눈​​숨 막히듯 외운 대사모두 쏟아내고지친 몸이 무너져야무대의 조명은 서서히 꺼진다​박수는 허공에 흩어지고빛의 조각들은 말없이 등을 돌린다​텅 빈 객석,그 한켠에 앉아 있던 하루의 눈빛이소란한 조명이 떠난 자리에홀로 남은 내 그림자 하나를조용히 끌어안는다​침묵 속에서하루는 조용히 눈을 뜨고나는 비로소대사가 아닌 내 목소리로장면이 아닌 내 삶으로무대 위를 천천히 오른다​그 순간,아무도 보지 않지만누구보다 진실한 나로서하루의 마지막 장면을 완성하는진짜 배우가 된다​고요한 무대 뒤편,아무도 없는 그 어둠 속에서하루가 내게 속삭인다​“잘했어.너의 오늘은,참 아름다웠어.”​-By 가치지기The Eye of the Day​Lines memorized to the edge of breath —spilled o..

2025.06.01

나이테

나이테​​겹겹이 감긴침묵의 고리​햇살의 숨결,바람의 그림자까지​나무는 해마다한 줄씩 세월을 새겼다​말 없던 나무의감춰진 일기장...​넓은 결 속엔행복했던 추억이좁은 결엔모질게 버텨낸 계절들이차곡차곡 모여한 줄 한 줄, 눈물겹다​속으로만 기록된단단한 시간들이세월과 어우러져이토록 찬란한 무늬가 된다​너의 울고 웃던 날들의 결을손끝으로 더듬으면너의 고요히 삼킨 밤들이살며시 느껴진다​나도 너처럼어느 날 두 동강 나는 날엔너처럼아름다웠으면 좋겠다​-By 가치지기​​ Tree Rings​Layers wrappedin silent rings​The breath of sunlight,the shadow of the wind​Each year, the treecarved a line of time​The tree’s q..

2025.05.25

감정(感情)

감정(感情)​ 기쁨은 노랑햇살 스며든 유리창처럼, 눈부시되가볍게 마음을 흔들고​슬픔은 회색비 내린 새벽 창가의 빛깔고요하고 짙으며, 오래 머문다​분노는 붉은빛타오르는 저녁놀처럼덮으려 할수록 더 번져 나가고​외로움은 푸른빛아무도 지나지 않는 안갯속있는 듯 없는 듯, 투명하게 스며든다​감정은희로애락의 결 따라겹겹이 삶에 스며들고​짙게 물든 감정들흘러가는 물에가만히 담가두면희연한 빛으로 번져간다​세월 속에바래지 않는 색이 있었던가​자꾸 들여다볼수록그 색은 더 짙어지고초라한 빛으로 물들 뿐​흙처럼 눅이고바람처럼 흔들리며불처럼 타오르고물처럼 흘러가며나무처럼 자라 흔적을 남기는,감정은 자연이 빚은 색이어서​물처럼, 바람처럼스며들되,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감정의 색은흘러갈 때가장 아름답게 빛난다 -By가치지기Emot..

2025.05.11

자랑

자랑​​말하지 않으면잊혀지는 것​말하는 순간,멀어지는 것​표현하지 않으면알 수 없는 것​말할수록,가벼워지는 것​드러낼수록,비워지는 것​그래서 자랑은​묵묵히 품을 때,추억 속에서 영원히 빛나고침묵 속에서 고요히 머문다.​​-By가치지기 Pride​​If you don't say it,you'll forget it​The moment you say it,you'll get further away​If you don't express it,you won't know it​The more you say it,the lighter it becomes​The more you reveal it,the more it becomes empty​So pride​When you hold it silently,it shine..

2025.04.11

봄비

봄비​ 벚꽃이 만개한 날,거리는 눈처럼 하얘지고사람들의 눈에도 봄꽃이 핀다.​꽃잎이 가장 눈부신 순간,봄비의 시샘은하늘빛을 흐리게 하고제대로 뽐내지도 못한찬란한 꽃잎들을바람과 함께 떠나보낸다.​벚꽃의 절정을 견디지 못한너의 시샘이그 순백의 웃음 위에어떻게 슬며시 슬픔을 뿌리는지나는 알 수 없지만,​어차피 상관없다.사랑도, 계절도, 꽃잎도오래 머물 수는 없기에잠시 아름다움의 끝에나만 아쉬워하면 그만이다.​그래,너의 시샘은너의 헤어짐에 대한오래된 아픔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꽃잎도, 계절도, 사랑도오래 머물 수 없기에더 깊이 마음에 남는다.​시샘도 결국은이별을 견디지 못한마음의 다른 이름.​그날 봄비는꽃을 시샘한 것이 아니라,함께 떠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잠깐 피었다 진다는 것을우리는 매해 봄마다다..

2025.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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