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글

숙명으로 시작한 운명(運命)

가치지기 2025. 2. 8.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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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입사 동기이자 직장 동료였던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 서로 다른 부서에서 일하며 자주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는데, 갑자기 병가를 내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길게는 휴직까지 고려하고 있다며, 자신이 자리를 비우더라도 팀원들을 잘 챙겨달라는 부탁을 남겼습니다.

카톡을 늦게 확인한 저는 부랴부랴 전화를 걸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친구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습니다.

"신장 암이래. 수술을 받아야 해."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여러 종류의 암에 대해 들어봤지만, 신장 암은 생소했습니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서 엉겁결에 타박하듯 말하고 말았습니다.

"매년 건강검진을 받는데, 왜 이제야 알게 된 거야?"

친구는 내시경 검사에만 신경 쓰고 초음파 검사는 받지 않았는데, 그게 후회된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심각하게 보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담담하다고도 했습니다. 저도 애써 태연한 척하며 말했습니다.

"나도 걱정하지 않을게. 대신 수술 잘 받고 빨리 돌아와."

제 아버지도 제가 고3 때 직장암 선고를 받으셨습니다. 몇 달밖에 살지 못할 거라는 의사의 말에 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아버지는 깊은 고민에 빠지셨습니다. 수술을 하면 장담할 수는 없지만, 직장을 잘라내고 항문을 옆구리에 연결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더욱 망설이셨습니다. 자존심 강하셨던 아버지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었을 겁니다.

당시 저는 수험생이었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집안의 분위기는 아버지의 병환으로 어수선했고, 저 또한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결국 수술을 선택하셨고, 불편한 몸을 안고서도 삶을 이어가셨습니다.

지금 아버지는 팔순을 넘기셨습니다. 여전히 건강을 유지하며 명절이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어려운 시기를 버텨낸 아버지를 보며, 저는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정해진 것이지만, 그 이후의 삶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을.

직장 친구에게 직접 전하지는 못했지만, 이 글을 통해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숙명과 운명으로 이루어져 있다고요.

숙명(宿命)은 '잠잘 숙(宿)' 자를 써서 타고난 불변의 운명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죠. 반면, 운명(運命)은 '운전할 운(運)' 자를 써서 변화와 바뀜을 뜻합니다. 즉, 운명은 우리가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운명은 앞에서 날아오는 화살이라 피할 수 있지만, 숙명은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이라 피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실패하거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이건 내 운명이야"라고 체념하지만, 사실 운명은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태어난 환경은 숙명이지만, 그 이후의 삶은 운명입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수술 후 식단과 생활 습관을 모두 바꾸셨습니다. 소식(小食)을 실천하며, 선식과 야채 위주의 식사를 하셨고, 꾸준한 운동과 함께 글쓰기와 사진 촬영을 즐기며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셨습니다. 건강하셨던 아버지의 친구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신 경우도 많지만, 아버지는 스스로 만든 운명 덕분에 지금까지도 건강하게 살아가고 계십니다.

그러니 친구에게도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수술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수술 이후의 삶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좋은 환경을 만들고, 긍정적인 선택을 하며 숙명이 아닌 운명의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친구가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건강하게 돌아오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이 숙명이 아닌, 자신이 만들어가는 운명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가치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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