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글

"이름보다 오래 기억되는 것은 삶의 온기입니다."

가치지기 2025. 2. 9. 19:33
728x90

우리는 내 이름 석 자를 남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치열한 삶이 안타깝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수많은 이름들 속에서, 심지어 같은 이름들 속에서도 나라는 존재를 기억하게 하기 위해 흔적을 남기려 애씁니다. 그러나 결국 소복이 내린 눈이 녹아 사라지듯, 아무리 크고 단단한 바위에 정으로 새긴 묘비의 기록조차도 세월이 흐르면 빗물과 바람에 닳아 사라집니다. 우리는 그 이름 석 자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지만, 과연 그 이름이 영원할까요?

오래전 미국에서 잠시 머물 때, 한국에서 온 친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도서관에서 인명사전을 뒤지더니 자신의 아버지 이름을 찾아 내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모습에서 자랑스러움보다는 당연한 듯한 확신이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집안이 그 정도의 사회적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내게 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나는 부럽기보다는, 한국인의 이름이 미국 도서관의 인명사전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그 친구의 부친이 인명사전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 살아온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들만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기록되는 그 사전에 실린 것은 분명 자랑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다만, 그 두꺼운 인명사전을 과연 누가 읽어볼까요? 그 친구가 굳이 찾아서 내게 보여주지 않았다면, 그분의 이름을 기억하고 찾을 사람이 있었을까요? 기록은 존재하지만, 단 세 줄 남짓한 그 기록 속에는 그분의 삶이 온전히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이름 아래 적힌 직장과 직책이 과연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름을 남기려는 노력은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우리가 남긴 삶의 흔적입니다. 톨스토이는 "우리가 남기는 것은 우리가 남기려 애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다른 이들의 마음속에 새긴 것"이라 말했습니다. 이름을 새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로 의미를 남기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살다 보면 이름이 기록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록되는 이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살아가는 동안 남긴 따뜻한 흔적들입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감사와 사랑으로 남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름 석 자에 집착하기보다는 우리의 삶 자체가 의미 있는 이야기로 남도록 살아가는 것이 진정으로 남겨지는 삶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름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과 사랑을 남기는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함께 나누고, 서로를 기억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름 석 자보다 오래 기억되는 것은 우리가 함께 나누며 살아온 삶의 온기입니다."

-가치지기-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