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
사랑하는 부모님께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께 무엇을 드리면 가장 기뻐하실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어버이날이면 5남매가 정성껏 쓴 손 편지를 받아드시고는 눈시울을 붉히며 행복해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이요. 그래서 이렇게, 중년을 훌쩍 넘어 얼굴에 주름 꽃 활짝 핀 아들이, 부끄럽게 얼굴 붉히며 소년으로 잠시 돌아가 편지를 올립니다.
넓지 않은 집, 늦은 밤 잠이 들면 새벽녘 부모님께서는 잠 못 이루시고 자식들 걱정에 이야기꽃을 피우셨습니다. 새벽의 고요한 시간, 숨죽여 나누시던 그 속삭임은 제 잠을 여러 번 깨우기도 했지요. 잔잔히 들려오는 그 사랑의 대화에 조용히 눈물짓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자식 하나하나를 걱정하시며 한숨 쉬고 안타까워하시던 그 밤들이 쌓여 오늘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어려운 시절에도 매일 새벽마다 기도를 다니시던 아버지, 어머니. 그렇게 새벽 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셔서는, 이불 덮지 않고 자고 있는 저를 차갑게 언 손으로 어루만지시며 소복이 이불을 덮어주시던 그 손길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버지께서 시골 벽지 초등학교에 발령받으셨던 가장 어려웠던 시절, 형과 누나들과 함께 다니던 시골 초등학교의 소풍날이 다가오면, 소풍 가방에 넣어줄 과자와 음료수를 사기 위해 먼지 날리는 숨쉬기도 어려운 버스를 타고 읍내까지 나가셨지요. 피곤한 기색 없이 환하게 웃으며 돌아오셔서, 5남매의 가방 하나하나에 차이 없이 정성껏 간식을 채워주시던 모습이 마음 깊이 남아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어느 몹시 추웠던 겨울밤, 교육 출장지에 계시던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은박지에 곱게 싸인 통닭 한 마리. 밤새 아껴가며 나누어 먹던 그 맛, 그리고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은 지금도 가장 그리운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세상 어떤 음식보다 그때 그 통닭이 가장 맛있었습니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자랑스러운 유전자 중 가장 감사한 것은 ‘성실함’입니다. 동이 트기 전, 아버지께서 삼 형제를 깨우시고 작은 비닐포대를 나눠주시던 새벽들. 뒷산에 올라 부지깽이를 캐던 그 시간들이 제 안에 성실함의 뿌리를 내리게 했음을 이제야 실감합니다.
어릴 적, 할아버지를 정성껏 모시던 부모님의 모습은 제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늘 부족한 제 효도가 부끄럽기만 합니다.
“키는 꼭 커야 한다"라며, 아침마다 커피포트에 뜨거운 물을 끓이시고 부족한 형편에도 분유를 거르지 않게 챙겨주신 부모님. 그 정성과 사랑 덕분에 큰 키는 아니지만, 그래도 옷 입으면 태는 나는 정도로 컸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정성으로 길러주신 자녀들이 이제는 모두 장성하여 각자의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으니,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 믿고 감사할 뿐입니다.
어느 날, 자식 걱정에 잠 못 이루며 한숨 쉬는 아내를 보며, 어릴 적 부모님이 밤마다 속삭이듯 걱정하시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정성을 다해 키운 자식은 언젠가 반드시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라고 말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 말처럼, 사랑과 성실함으로 지은 자식 농사는 결코 헛되지 않음을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처가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시기에, 그 수고로움과 기다림의 깊이를 더욱 실감합니다.
부모님은 참 좋은 농부셨습니다.
연둣빛 철없던 아이들을 정성으로 길러내시고, 그 사랑과 노고로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해주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부모님의 농사가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증거입니다.
그렇게 주렁주렁 맺힌 열매들이 이제는 사진 한 장에도 다 담기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팔순을 훌쩍 넘기신 아버지, 어머니.
이제는 드시고 싶은 것 마음껏 드시고, 가고 싶으신 곳 어디든 가실 수 있도록 호주머니 두둑이 채워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아직 넉넉지 못한 형편에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좀 더 일찍 철이 들었다면…
이 즈음에는 별장도 지어드리고, 세계 일주도 보내드리고, 세상 온갖 산해진미도 다 맛보게 해드릴 수 있었을 텐데…
세월은 어느새 흘러 부모님의 입맛도 예전 같지 않으시고, 제 마음은 점점 초조해지는데, 부모님은 하루가 다르게 연로해지시니 어버이날이 더욱 울적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합니다.
부디 지금처럼 건강 지켜주시고, 오래오래 저희 곁에 머물러 주시기를… 이제야 철들어가는 자식의 효도를 마음껏 받아주시기를…
더 열심히 살아서, 언젠가 막내가 꼭 별장을 지어드릴게요.
그때는 다투시는 날이면 한 분은 그곳에 머무시며 마음을 추스르시고, 직접 심으신 텃밭을 돌보시며 위로받으세요.
창밖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시며, 고운 생각만, 좋았던 기억만, 감사했던 순간만 떠올리시길 기도합니다.
아버지의 여든네 번째, 어머니의 여든두 번째 어버이날을 맞아 막내가 진심을 담아 이 편지를 올립니다.
저를 이 세상에 있게 해주시고,
이만큼 살아오게 해주신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막내아들 올림
- By 가치지기